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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 국 -  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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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有天堂, 下有蘇杭.(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항주와 함께 중국에서 자연 경관이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양자강 삼각주 평원 위에 자리잡고 있으며, '동양의 베니스'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유명한 물의 도시이다.
그리고 정원과 물로 대변되는 중국 남방의 대표적인 도시이기도 하다.
기온은 온난습윤하며, 토질이 좋아 자원이 풍부하고, 교통 또한 매우 발달되어 있다.
이 때문에 '인간의 천당'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다.
전체 면적은 8,488㎢인데, 그 중 평원이 4,654㎢를 차지한다.
총인구는 571만 명이며, 그 중 시내 거주 인구는 105만 명이다.
소주는 중국 역사문화도시 중 하나로서, 기원 전 514년에 도시가 성립되었으며 현재까지 2,5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서한 초기에는 동남부의 최대의 도시로 번영하여 "사주지부(絲綢之府 : 비단의 도시)", "어미지향(魚米之鄕 : 바다가 가까워 살기 좋은 곳)", "원림지도(園林之都 : 정원의 도시)" 등으로 칭해졌다.
송대에 이르러서 더욱더 번성하여, 비단의 생산지로서도 명성을 날렸다.
이때에 소주에 세워진 탑들이 많아서 지금도 송대의 탑이 가장 많이 남겨져 있고, 소주의 자랑인 정원도 이때부터 많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명, 청대에 이르러서도 그 명성이 덜하지 않았고, 지리적 장점과 견직물 산업을 활성화시켜 부유한 상업 도시로서 그 명목을 계속 유지해 왔다.
또한, 도시의 발달과 더불어 소주의 정원도 유명해져 "천하의 원림은 강남에 있고, 그중 소주의 정원이 가장 으뜸이다"라는 말을 탄생시켰다.
소주의 정원은 정교함이 특징으로 중국 남방 고전원림건축예술의 정화라 할 수 있다.
송대부터 이어진 정원은 200가구에 이르렀고, 지금은 10군데 정도가 복원되어 외부에 개방되고 있다.
그 중 송대의 창랑정(滄浪亭), 원대의 사자림(獅子林), 명대의 졸정원(拙政園)과 유원(留園)이 가장 대표적인 강남의 원림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1. 졸정원  
소주 동북쪽에 위치해 있고, 명 정덕(鄭德) 4년(1509년)에 지어졌다. '졸자(拙者)가 정치를 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유원(留園), 이화원, 승덕이궁(承德離宮)과 함께 중국 4대 정원에 꼽힐 정도로 매우 아름다운 풍경을 지닌 곳이다. 미경으로 인해 홍루몽 대관원(大觀園)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졸정원은 명나라의 왕헌신이 조성했다고 전해지는데, 화원은 동, 중, 서 세 부분으로 나뉘며, 명대의 전통적인 건축 양식이 잘 반영되어 있다. 창살 무늬가 모두 다를 정도로 섬세하며, 건물은 용의 형상을 띠게 하여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반영하였다. 총 면적은 5만㎡이며, 그 중 3/5정도는 연못이 차지한다.
연못을 중심으로한 작은 정자나 복도, 산을 본떠 돌로 만든 석가산이 만들어져 있는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이색적인 건물인 견산루, 파산랑과 경치를 보기위해 지어진 원향당 등이다.
   
2. 한산사  
남조 양(梁) 천감(天監) 연간에 지어진 사원이다. 원래 명칭은 묘보명탑원(妙普明塔院)이었으나 당대 고승인 한산자(寒山子)가 이 곳에서 머문 후에 그의 이름을 따 한산사로 명칭이 바뀌었다. 대웅전은 높이가 12.5m이며, 뒷 편에는 유명한 종이 있는데, 높이가 2m이고 직경이 1.4m이다. 당대의 청동 유두종을 모방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일본인이 광서(光緖) 32년에 바친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건물은 일부 파괴되어 신해혁명이 일어난 해인 1911년에 다시 지어진 것이다
한산사는 당나라의 시인 장계(張繼)의 《楓橋夜泊》이라는 시로도 유명하다. 장계는 노를 저어 마을로 돌아가던 중 밤중에 풍교에 배를 정박해 두고 있는데 그 때 마침 한산사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이 시를 지었다고 한다.
月落烏啼霜滿天 : 달은 지고 까마귀는 우는데 하늘 가득 서리가 내리네
江楓漁火對愁眠 : 풍교에는 고깃배 등불을 마주하여 시름 속에 자고
姑蘇城外寒山寺 : 고소성 밖 한산사에는
夜半鐘聲到客船 : 한밤중에 종소리가 객선에 이르네.
     
3. 호구탑  
북서쪽으로 5㎞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원래 이름은 해용산(海涌山) 이었는데, 호랑이가 웅크려 앉아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지금의 이름이 붙여졌다.
춘추시대 오왕인 합려(闔閭)가 이 곳 연못 아래에 묻혀 있다고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합려의 무덤을 만들 때 관 속에 검 3000개를 함께 묻었다고 한다.
이 검들 중에는 훗날 명검으로 전해지는 검들이 포함되어 있다.
혼란했던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진시황은 이 검들을 차지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보는 앞에서 도굴을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호랑이 한 마리가 뛰쳐나왔고, 결국 이 사건을 계기로 도굴은 중단되었다.
지금은 이 곳에 물이 들어차서 연못이 되었고,사람들은 검지(劍池)라고 부른다.
40m 높이의 언덕 정상에는 호구탑이 있는데, 높이가 47.5m이며 수나라 때 지어진 것이다. 소주에서 가장 쉽게 눈에 띄는 건축물로 몇 차례의 보수공사에도 불구하고 북서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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